sms*THOUGHTS

이거 다 관두고 불태울 거야

ROOT-1 2025. 9. 1. 10:48

 

만화 그리다 보면 발생하는 루틴이거든?

내가 항상 이런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

하지만 막을 수 없어

 

모든 것이 끔찍하게 느껴져

어제로 4권 58페이지 작업을 끝냈다

예상 120페이지 정도를 보고 있으니 대략 절반 정도다

반이나 온 거라고 생각해 반 밖에 못 왔다고 생각해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이제와서 그만두기엔 너무 많이 그렸고

남은 것들을 계속 그리기엔 너무 많이 남았어

 

그림 그리는 게 싫고 괴로워서 그러냐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재밌어 그리는 게 너무 너무 재밌어

컷을 나누고 대사를 고민하고

전에는 엄두도 못 내던 다채로운 구상을 해낼 때마다 짜릿해

매번 새로운 암시와 새로운 해석을

내 스스로 만들어낸 작품에서 다시 찾아내고 다시 읽어내고

 

하지만 그러고도 나는 좋은데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그렸으니까

근데 그냥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고문 같은 만화였다

 

내가 만약에 어떤 랜덤한 인물인데

갑자기 이 만화를 보라고 해서 보면

지루함과 거슬림 때문에 괴로워서 짜증이 막 날 것 같아

 

무관심은 너무 힘들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언제나 냉랭하군

노력이 아무것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에 알았지만

난 내 시기심, 질투, 자격지심, 열등감 이런 것들을 통제하는 것에 여전히 미흡하다

 

아 그리고 평가 받고 싶지도 않아

내 많은 걸 희생해서 만들어 낸 무언가들이 나쁜 평가를 받으면

아무리 기대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이 조각나는 것 같아

거긴 내가 들어 갔는데 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야

이건 만화 같은 창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논문 내가 만든 프로그램 ... 

 

내 스스로도 내 논문이 못난 것 정도는 알았지만

내용에 대한 지적이나 하찮은 점수를 보면 순간적으로 억울함과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차마 참을 수 없어

내가 코드를 잘못 짜서 서버가 엉망인 건 알았지만

서버를 욕하는 악플을 마주하면 그게 아무리 가볍더라도 천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 굉음에 귓가가 울리는 것 같아

 

나는 뭔갈 만들면 안되는 사람인 걸까 이토록 의연하지 못해서

그냥 만들었을 뿐인데 끊임 없이 꼼지락 거리는 나같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지나간 자리에 흘린 잡동사니들일 뿐인데

그것 하나 하나를 내 자신이라고 믿어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

 

비교 하고 있어 남들이랑 비교하고 있어 

나는 무엇이 부족해서 동경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 만화를 그렸는데

좋다고 말할 때 사용한 방법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어서 속이 곪아가는 기분을 느껴

 

진짜 개지랄

뭐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