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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태양과 녹색의 팔각별

ROOT-1 2025. 4. 21. 01:05

캐릭터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부여하다가
그 여러 이야기를 압축한 단일 심볼이 있으면 오타쿠 생활이 한결 더 풍족해 지는 법인데.
그걸 결정하는게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제법 마음에 드는 설정이 나와줬고 기쁘다.
그것에 대해 써보는 이야기.


이 그림은 완성까지 무려 2년이 걸린 오랜 그림인데

물론 단순히 그리는 건 3시간 이었고... 도출이 2년이란 뜻

 

이건 23년도인가, 그렸던 그림.

의상이나 제스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의 플라톤을 모티프로 했다.

멋진 그림이죠.

 

흔히 알려진 해석대로 플라톤이 가르키는 건 이상,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키는 건 현실

이라는 심플한 소스만 가져왔고 그보다 더 복잡한 내용은...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하튼 이러한 주제를 리츠의 해석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그림인데,

대학을 막 다니게 된 시점의 리츠라면,

다소 현실과 멀고,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탐구에 몰두해 있으며,

타인에 대한 몰이해 속에 고립되어 갔을 것이고,

나는 그 형상을 대충 묶은 머리와 다소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 보는 시선에서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다.

 

아 근데, 플라톤이 나왔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게 리츠는 Etica-윤리,도덕- 를 받아들일 유형도 아니거니와

손이 땅을 향하더라도 시선이 위를 향한 모습은

대체 어떤 느낌으로 그려져야 할지 그때는 떠올리지 못했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항적인 성격이 아닌 탓에 도발적인 시선은 다소 무리고

-소극적이지만 능동적인 반항- 이에 관해서는 따로 논문을 하나 더 쓸 수 있다.

언젠가 현실과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나? 라기엔 그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 저런 해석은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에티카라니! 이 기집애한테!

 

하지만 보시다시피 한층 더 비-현실적인 은유를 담도록 만들었다.

 

이 그림에서 핵심 요소는

검은 종이를 가진 녹색의 책

고깔 모자에서부터 내려온 어두운 베일

땅을 가르키는 제스처

그리고 심볼로써 녹색의 팔각 별

네가지

 

우선 녹색 별,

놀랍게도 녹색 별은 볼 수 없다는 사실.

왜냐하면 녹색이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중간에 있기 때문에

별에서 나오는 많은 빛의 색이 섞이면서 사람의 눈에 흰색으로 보이게 된다.

이 녹색 별은 결국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팔각이란 것은 완벽을 의미하는데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완벽한 것은 곧 이데아라고 해석하겠다.

무엇의 이데아인고 하면

아마 내가 지금 느끼기엔 호기심이 아닐까.

 

다음으로 베일은 그림자를 의미한다.

그림자는 3차원의 물체가 햇빛을 통해 2차원인 평면에 투영된 형태인데

이는 3차원 원본의 아주 많은 특징을 상실 했지만 여전히 그 원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예컨대 상실된 특징이란 색이나 냄새, 소리, 요철, 재질,

동물이라면 그 생명력과 욕구, 뭐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무엇이 상실됐느냐는 그닥 중요하지 않고,

캐릭터 메인 키워드가 상실Deprivation 이란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두가지 요소를 현실, 곧 바닥을 가르키는 제스처를 통해 결합해봤는데

이 아이는 어떤 고차원적 이데아의 저차원(현실) 투영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아마 3차원 원본과 2차원 그림자보다 더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덕분에 별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베일의 구도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이 아이가 가진 많은 특징 중에, 과도한 호기심-윤리와 도덕을 넘나 드는-이 있는데

덕분에 나는 이 캐해석이 제법 적절하다고 여겼고 아주 뿌듯했다.

물론 이데아로부터 비롯된다 한들 그가 인간 이상의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따지자면 우리도 모두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가진 불완전하지만 실재하는 현상체가 아닌가. 음 철학 잘 모름.

아무튼 아무리 내 그림자라고 해도 나일 수 없는 것과 같다.

 

거의 핵심적인 해석은 전부 얘기했고 검은 녹색 책은...

이전 그림과 더 이어지는 내용이다.

 

리메이크지만 이번에 새로운 해석을 더 담게 되었으므로 부연한다.

다른 것은 거의 비슷하다.

여전히 오만한 시선과 미소, 그가 무엇이든 이해했다는 자신감.

 

포인트 요소는

붉은 망토,

흐트러진 머리와 오만한듯 평온한 표정

붉은 책과 푸른 책

하늘을 가리키는 제스처

황금 태양

 

왓, 황금 태양이요.

늘 컴컴...한 분위기의 빌드를 가져가는 주제에 다소 엉뚱한 심볼이 아닌가 싶은데

잘 생각해보면 태양도 별이고 별도 태양이다.

가진 의미는 많이 다르지만 결국 같은 걸 상징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금 태양일 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심볼을 자세히 보면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 우로보로스이다.

완전함을 상징하는 또 다른 방법, 으로 볼 수도 있고

하도 많은 의미를 가진 심볼이라 뭐라 딱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내가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의미는 순환이다.

 

리츠가 성장을 통해 여러가지 변화를 겪으며 내재하게 될 사상 중 한가지는

삶과 죽음은 기나긴 순환 속의 또 한가지 상태일 뿐이며 거부할 이유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다소 해탈한 감각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는 만화를 확인해주세요. (언제 그림?)

여튼 우로보로스는 그러한 의미로 사용됐다.

물론 뱀 자체가 가진 재생이나 불사의 의미도 어느정도 내포한다.

의사니께요.

 

내가 맨날 리츠가 박애주의자라고 헛소리를 하지만

아 어쩌면 진짜 박애주의자일지도 모른다.

황금 태양은 의도하지 않지만 닿는 모든 곳에 열을 전달할 뿐이다.

본인이 원하는지는 태양의 의사를 물을 수 없어서, 알지 못했다.

 

다음은 붉은 책과 푸른 책,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녹색 책...인데

 

붉은 색과 푸른 색은 재밌게도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양 끝단이다

리츠는 자신의 볼 수 있는 범위 (가시광선) 안의 모든 지식(책)을 손에 들고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웃고 있다.

또 어깨엔 명예와 권력이 연상되는 붉은 망토까지, 대비되는 흰 금장 로브가 그 화려함을 더해주는.

나는 이 해석이 추가된 덕에 저 미소에 오만함뿐만 아니라 우매함이 보여서 박수치면서 좋아했다.

 

이들 책은 흰 페이지를 가진 화려한 책들인데, 이건 읽을 수 있다는 뜻, 그리고 아주 흥미롭다는 뜻.

반면에 녹색의 책은 표지를 볼 수 없지만 내용을 열어 들고 있는데

검은 종이는 읽을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구성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자신이 볼 수 없는 것(녹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디 깨달아 주었으면 좋겠고

뭐 이렇게 좋은 심볼은 하나 만들어가니

앞으로 또 천년만년 우려먹어야겠다.